
마음 속에 있는 진짜의 소리를 만나기까지... 그 소리와 만나면 죽을 것 같아 피하고 피했던 그 시간을 지나... 마음 속의 진짜의 소리와 만날 때, 솔직해질때...우리는 관계 속에서 진짜가 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지난 글에 제가 가면을 쓰고 살아왔음을... 나눴습니다.
가면을 쓰고 살았습니다.
"강한 척", "공부", "신실한 신앙인".
그 가면들 밑에는 무엇이 있었을까요?
주님은 나로 하여금 그 가면 밑을 들여다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것은...
외롭고 고독한 나였습니다.
아틀란타에서의 기도
처음 미국 아틀란타로 어학연수를 왔습니다.
약 1년만 머물다가 한국으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나를 아틀란타의 조용한 아파트에 홀로 머물게 하시면서 하나님과 은밀한 기도를 하게 하셨습니다.
이곳에서 이전에 내가 경험해보지도 못했던 기도를 경험했습니다.
치유의 기도, 영적싸움 그리고 중보기도….
이때 생각은 나지 않지만, 아주 어린시절의 상처를 주님께서 어루먼져 주셨던 것 같습니다.
이때 나는 주님께 기도했습니다.
“주님, 이러한 치유와 과정에 대해 해석 해주세요”

탈봇 신학교에서의 시간
한국에 돌아갔다가 몇 달 후하반기에 탈봇 신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이곳에서 공부하며 마음, 내면, Hidden Heart 등을 배우면서 내 마음에 있는 상처를 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때 상담을 받을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오랜 시간의 상담받는 시간을 통해… 내 내면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상담자는 계속 물었습니다.
"엄마와의 관계 속에서 느껴지는 것이 무엇인가요?"
그때마다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배탈이 나기도 하고, 잠이 오기도 하고, 내 몸에서 다양한 반응들이 나왔습니다.

이러한 반응이 일어났던 이유는 내 안에 진실과 직면하는 것이 두려웠던 것 같습니다. 내면의 상처가 신체적인 반응을 통해 나타남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상담자가 또 물었습니다.
"영미 씨, 엄마에 대해 어떻게 느껴지세요?"

이 질문은 상담 과정에서 계속 되었습니다. 그날도 상담자는 여러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 질문을 또 했습니다.
이때 나는 내 마음 깊이 엄마에 대해 느끼는 나의 감정을 나누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엄마가 나를 사랑하지 않아요."
눈물을 뚝뚝 흘리며 흐느꼈습니다.
상담자는 내게 말했습니다.
"영미 씨, 맞아요. 엄마와 영미 씨의 관계는 텅 빈 구멍이에요. 그런데 그것에 뭔가 있다고 착각하며 살았어요."

엄마가 나를 사랑하지 않은 것은 아닐 것입니다. 엄마가 늘 바빴고 챙겨야할 가족들이 많았기에 내가 느꼈던 감정이었고 이 텅빈 마음이라는 상태를 받아들이고 그 안을 사랑으로 채워가기 보다는 텅빈 구멍 상태가 메워졌다고 착각하며 살았던 것 같습니다. 진실과 만나야 그 상태에서의 치유와 사랑을 경험할 수 있음을 그때 깨달았습니다.

내 안에 있는 텅빈 구멍을 인정하며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진실로 나아가고 또 엄마와도 진실로 나아갈 수 있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존 스토트의 책, 그리고 비디오
몇 년 전, 존 스토트의 "현대 사회 문제와 그리스도인의 책임"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남자와 여자" 부분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여성들이 어떤 맥락에서 남성 혹은 남성들에게 정중하고 든든한 보살핌을 받을 수 있다면, 그들의 여성됨이 온전히 꽃피우는 데 더 도움이 될 것이다."
즉, 남성의 보살핌 속에서 여성됨이 온전히 꽃피울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한국이나 미국에서 경험했던 많은 남성들은 "보살핌" 대신에 무시와 짓밟음으로 여성들을 대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돌봄과 보호가 없는 상태에서 아무런 기반과 배경 없이 당해야 했던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 후, 상담 관련 수업을 듣다가 그때 보여주었던 비디오를 시청하면서 왜 그렇게도 눈물이 났는지...
특별히 내가 방에 갇혀서 나오지 못하는 것 같은 고통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때, 주님 앞에 이렇게 나의 소원을 토로했습니다.
"주님, 저는 보호막 없이 살았어요"

"주님, 저는 보호막 없이 살았어요.
저는 바람막이가 필요해요.
저는 너무 외로워요.
황량한 곳에 홀로 서 있는 것 같아요."
이 기도가 나왔을 때, 난 놀랐습니다.
이게 내 마음 깊은 곳에 있던 진짜 외침이었구나.
아틀란타에서 아주 어린아이처럼 울었던 이유.
상담실에서 "엄마가 나를 사랑하지 않아요"라고 울었던 이유.
가면을 쓰고 강한 척했던 이유.
공부로 나를 증명하려 했던 이유.
모든 것이 이 한 문장으로 설명되었습니다.
"저는 보호막 없이 살았어요."
피부 없이, 보호막 없이
꿈에서 본 그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피부가 없이 모든 핏줄이 표면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 나.
아버지가 나를 보호해주지 않은 것 같은 삶
마치 엄마로 부터 사랑받지 못하고 살았던 것 같은 삶
나는 바람막이 없이 세상의 모든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살아온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 벽을 쌓았습니다.
"강한 척"이라는 가면으로.
"공부"라는 성취로.
"신실한 신앙인"이라는 외피로.
하지만 그 안에서 나는 너무나도 외로웠습니다.
주님의 응답
주님께서 책과 비디오를 통해 깊은 곳에 홀로, 보호막 없이 사는 것 같은 그 외로움 속에 갇혀 있는 나를 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의 소원을 주님께 아뢰게 하셨습니다.
진실한 나와의 만남이 없이는 주님께 난 솔직한 기도를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무수히 만들어낸 가면 중, 깊은 곳에 도사리고 있던 나의 진실.
나는 혼자 외로이 살아갈 수 없다는 것.
누군가가 보호가 되어 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
그것을 주님께 고백했습니다.
진정한 보호자

물론 진정한 보호가 되실 분은 하나님 아버지 그분이십니다.
하지만 이 땅을 살아가면서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아주 친밀한 관계를 통해 실제적으로 보호막이 되는 것을 경험하게 하심을 느끼게 됩니다.
이 땅의 아버지가 내게 실제적인 보호자로 바람막이가 되지 못함으로 인해, 내가 끊임없이 뭔가 보호처를 찾아 헤매면서 스스로 벽을 쌓고 스스로를 지켜내려고 애를 쓰며 가면을 써왔던 것 같습니다.
이제는 그 가면 밑에 있는 외로움에 떨고 있는 나를 주님께 드립니다.
"저는 보호막 없이 살았어요. 바람막이가 필요해요."
이 고백이 주님께 상달되기를 기도합니다.
당신도 보호막 없이 살고 있나요?
혹시 당신도 보호막 없이 살고 있지는 않나요?
혼자 모든 것을 감당하며, 스스로를 지켜내려고 애쓰며, 강한 척하며...
하지만 그 안에서 너무나도 외롭고 고독하게...
주님은 그런 당신에게도 묻고 계십니다.
"네가 정말로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
가면 밑에 숨겨진 진짜 외침을 주님께 아뢰어도 괜찮습니다.
"저는 외로워요."
"저는 보호받고 싶어요."
"저는 혼자 감당할 수 없어요."
그 솔직한 고백이 치유의 시작입니다.
"주님, 저는 보호막 없이 살았어요.
저는 바람막이가 필요해요.
저는 너무 외로워요.
주님 당신으로만 이 지독한 외로움이 채워질 수 있음을 고백합니다"
이 기도를 주님께 드립니다.
다음 글에서는 갇혀있는 알, 그리고 출구를 찾지 못해 울부짖었던 이야기를 나누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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